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아타리 쇼크 (문단 편집) === 자폭 버튼을 누르다 === 그래도 겉으로 보기에 북미 게임계는 계속 성장 중이었고, 1982년에 절정에 이르렀다. 하지만 이런 막대한 성장이 모두의 눈을 가리게 했고, '''아타리의 셀 수 없는 미스 사이에서도 중대한 미스를 불러들였다.''' 아타리에서는 급성장으로 수요예측을 감당하기 어려워 1981년 10월에 각 도매상에 1982년에 판매할 수량을 미리 주문시켰다. 그때는 아타리에서도, 증권가도, 소매상에서도 모두 성장을 의심하지 않았기에 다들 미칠 듯한 물량을 써냈고, 그렇게 결정된 것이 '''팩맨 카트리지 1200만장'''이라는 주문량이다. 1982년 3월에 아타리 전용 [[팩맨#이식판|팩맨]]이 발매되었고, 무려 800만 장이 판매됐다. 하지만 4백만 개는 고스란히 남아 크나큰 부담이 되었고, 조악한 품질로 반품되어 돌아온 것들은 상황을 악화했다. 그럼에도 1982년 6월까지는 누구도 성장을 의심하지 않았고, 증권가 역시 최대 300% 성장이라는 분석안을 내놓아 장작을 쌓는 데 보태었다. 1982년에 북미 게임계는 최고전성기를 맞은듯이 보였지만, 비디오 게임기는 경쟁자의 범람과 더불어 저가격 가정용 퍼스널 컴퓨터와도 경쟁했다. 이는 결국 시장 포화로 이어졌고, 뒤늦게 우후죽순처럼 끼어든 서드파티들은 슬슬 탈락할 위기를 맞고 있었다. 결국 1982년 말부터 시장 붕괴의 신호탄이 쏘아졌다. 1982년 12월 8일의 워너 커뮤니케이션즈에서는 1982년 수익이 예상보다 훨씬 적을 것이라고 말하면서 아타리 가정용 게임기 부서 부장에게 책임을 물어 해임했다. 이는 뉴욕 증권 시장에 쇼크로 이어져 모회사인 [[워너 미디어|워너 커뮤니케이션즈]]의 주가 폭락을 촉발했다. 마텔, 콜레코 같은 경쟁사에서는 물론이고, 코모도어 같은 홈 컴퓨터 메이커에, [[토이저러스]] 같은 유통 쪽까지 관련된 주식들은 모조리 곤두박질쳤다. 여기에 설상가상으로 크리스마스 연말 대목을 대비해 만든 비장의 소프트 [[E.T.(게임)|아타리 2600판 E.T.]]가 화려하게 망하면서 아타리는 또 다시 크나큰 손해를 입었다. 아타리의 판매 예상량은 400만 개였지만 팔린 것은 약 250만 개 정도였다. 사실 팩맨의 케이스와는 다르게 이 경우에는 영화의 흥행정도를 봤을 때 결코 무리한 예측이 아니었다. '''게임이 쓰레기로만 안 나왔으면.''' 판매시기를 무리하게 앞당겨 겨우 5~6주만에 게임을 만들었고, 결국 참혹하게 망했다. 이는 당시 워너 커뮤니케이션즈 CEO인 스티브 로스의 탐욕에 따른 무리한 시도였고, 아타리 사장인 레이몬드 카사르 역시 반대했다고 주장했다. 이듬해인 1983년, 1982년 4분기와 연간 실적을 발표했는데, 1982년에 20억 달러의 매출액을 발표해, 1981년의 11억 달러 매출액에 비해 얼핏 고무적인 것으로 보였다. 하지만 1982년 4분기 영업이익을 고작 120만 달러라 발표했다. 1981년 4분기의 영업이익 1억 3650만 달러에 비해 큰 폭으로 감소한 것이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